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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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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3-05 17:48 조회1,0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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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선조 인물록

人物錄


방휴(方休) : 중시조 온수군 휘 운()의 손자. 1010(고려 현종(顯宗) 원년) 거란(契丹)2차 침입시 낭장(郎將)으로 공을 세워 평양성을 지켰으며, 1018년 거란의 3차 침입시 강감찬(姜邯贊) 지휘하에 지채문(智蔡文)등 여러 장수들과 함께 귀주대첩(龜州大捷)으로 승리하고, 1019년에는 중랑장(中郎將)이 되었다.


방오계(方吳桂) : 1075(고려 문종(文宗) 29) 호부상서(戶部尙書)에 올랐다.


방유(方裕) :고려 숙종(肅宗)조에 문과에 급제하고, 예종(睿宗)조에 추밀원직학사 안렴사(按廉使)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를 했다. 사위는 정습명(鄭襲明)이다.


방재(方宰) : 방유()의 아들. 1135(고려 인종(仁宗) 13) 대호군으로 김부식(金富軾)과 함께 묘청의 난을 진압했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


방희진(方希進) :호는 박재(博齋). 보명(譜名) 희진(曦進). 1175(고려 명종 5) 국자시에 급제하고 1177년에 빈공과(賓貢科)에 등과 후 양광도 관찰사를 거쳐 진현관대제학과 상서령에 이르렀으며 숭록대부에 승품으로 올랐다.


방보(方甫, ? ~ 1271) :밀성인(密城人)으로 1270년 고려의 원종이 대몽항쟁을 포기하고 강화(講和)하기로 함에 반발해 배중손(裵仲孫)이 이끄는 진도 삼별초(三別抄)에 호응하여 개국병마사(開國兵馬使)로 칭하며,[20] 밀성군(密城郡)을 중심으로 영남민(嶺南民)들을 규합하여 대몽항쟁을 계속하기로 했으나, 배신자 일선(一善) 현령(縣令)에게 죽임을 당한다.


방우선(方于宣, 1253 ~ 1321) : 1269(고려 원종 10) 국자시에 장원급제하고, 1311(충선왕 3) 평양부윤(平壤府尹)이 되어 안정도존무사(安定道存撫使)를 겸하였다.


방우번(方于蕃) :문정공(文定公) 휘 우선(于宣)의 동생이다. 정순대부 판통례원사 우문관제학 지제교(知制敎)를 지냈다. 추밀원당후관과 문하평리를 지낸 김진(金轃)이 외손자이다.


방우정(方于楨) :충선왕 3(서기 1311) 산신(山神)을 숭상하여 공경(公卿) 사서(士庶)가 모두 친히 경기도 양주 감악산(紺岳山)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지중문하사(知中門下事) 민유(閔儒)와 전소윤(前少尹) 김서지(金瑞芝)등도 감악산에 제사를 지내려고 장단진(두지진)을 건너다가 익사하게 되자, 사헌부 장령으로 그 폐해를 지적하여 충선왕에게 상소(上疏)하여 이를 금지했다.[23] 충숙왕 5(서기 1318) 왕명으로 한반도 남쪽 도선국사가 삼한통일을 위해 창건했던 3대 비보사찰중의 하나인 경남 진해시 소재 용암사(龍巖寺) 중창(重創)을 시행하여 완공을 보았으며, 그해 1118일에 고려말 천태종의 원혜국사(圓慧國師)의 제자 무외국사(無畏國師) 정오(丁午)를 맞아 약 7일 동안 성대하게 낙성(落成) 법회(法會)를 열고 왕의 수()와 복을 빌었다. 그러나 이 사찰은 지금 폐찰되여 부도와 석탑만이 외롭게 있다. 용암사의 중창당시 왕명으로 대장경을 보수하여 새 전당과 새창고 안에 안치하였다.


방신우(方臣祐, 1267 ~ 1350) :추성돈신양절공신(推誠敦信亮節功臣) 상락부원군. 경상도 관성현(管城縣, 현 충북 영동)의 대대로 내려오던 사족(士族) 출신. 아버지는 상주목사 휘 득세(得世)이다. 1298년 충선왕조에 안평공주를 수행 원나라에 들어가 수원황태후를 섬기고 벼슬이 평장원사(平章院事)에 올랐으며, 1298년 벽상삼한정광이 되고, 충선왕조에 홍중희(洪重喜)의 무고를 원나라 황제에게 간하여 물리쳤으며 금자장경을 완성한 공으로 1310년 중모군(中牟君)에 올랐다. 1332년 고려에 돌아와 선흥사(禪興寺)를 수리했으며, 1342년 원나라로 들어가 이듬해 병을 얻고 1345년 경인(庚寅)년에 죽었다.


방서(方曙, 1275 ? ) :()는 원명(源明) 시호는 장헌(莊獻)으로 문정공(文定公) 휘 우선(于宣)의 아들이다. 봉익대부(奉翊大夫) 예문관제학 판도판서(版圖判書)직을 역임 했다. 양녕대군(讓寧大君) 스승 경주(慶州)이씨 계림군(鷄林君) 이래(李來)의 부친 석탄공(石灘公) 이존오(李存吾)가 외손(外孫)이며, 판전교시사와 강릉존무사를 했던 순천(順天)김씨 김천호(金天晧)가 장인이다.


방현(方玄) : 생몰년미상. 고려 충선왕(忠宣王)시 명경업과(明經業科) 등과, 간의대부를 지냈다. 간의공파 파조(派祖).


방훤(方暄) :생몰년미상. 고려조 문과에 등과후 안렴사(按廉使)를 지냈다. 절손이 되었다.


방적(方迪) :생몰년미상. 고려 충렬왕시 태상경(太常卿)을 지냈다.군공(軍功)으로 군위군(軍威君)을 봉() 받았다. 태상경파 파조


방언휘(方彦暉) : 아버지는 휘 서(). ()는 달가(達可) 호는 국서(菊墅)[30] 또는 독락정(獨樂亭). 고려 충혜왕조 1342년 명경업과에 등과한 후 사인(舍人)을 거쳐 밀직원직학사(密直院直學士)를 지냈으며, 충목왕(忠穆王)의 국구(國舅, 장인)로 온천부원군(溫泉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경숙(敬肅)이다.


방천봉(方天奉) : 장헌(莊獻)공 휘 서() 의 아들이다. 공민왕 12(1363) 11, 1359(己亥, 공민왕 8) 대호군(大護軍)으로 정세운(鄭世雲)과 같이 홍건적(紅巾賊)을 토벌한 공으로 2등 공신(功臣)으로 녹훈됐다.


방절(方節) : 1359(공민왕8) 기철(奇轍)을 제거한 공으로 2등 공신(功臣)으로 녹훈되고, 1363(공민왕12) 3월에는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경성수복공신 1등공신에 책봉되고, 온양부원군(溫陽府院君)에 봉해졌다. 그해 11월에 다시 1359(공민왕8)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2등 공신(功臣)으로 녹훈됐다.


방순(方恂) :초명 방득주(方得珠). 호는 만송당(晩松堂) 시호(諡號)는 문의(文毅). 방언휘(彦暉)의 아들. 1362(공민왕 31)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과 함께 문과에 등과하고, 1369년 좌랑(佐郞)을 거쳐, 13757월에는 정몽주와 장인 윤호(尹虎) 등과 같이 귀양을 가기도 했으나, 곧 복직되어 1376년 중서사인(中書舍人) 1377년 성균관 좨주(祭酒)를 거쳐 판전교시사를 한다. 조선이 건국되자 예조참의(禮曹參議)에 임명 되었으나, 동료인 광주인(廣州人) 둔촌(遁村) 이집(李集)과 더불어 불사이군(不事二君) 충절을 지켜 숯골에 은둔중 붙잡혀 황해도(黃海道) 금촌(金村)서 죽음을 당했다. 후손들이 시신을 찾지못해 현 성남의 수정구 태평동에 의장(衣葬)한 것을 1969년 성남시 개발로 광주시 오포면 양벌리(陽筏里)로 이장하였다.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켜 순절 했으나, 아들 영화군(永華君) 휘 운실(芸實, 일휘 )과 손자 (((()이 조선개국을 도우는 것은 막지 않았다. 부인은 조선 개국공신 파평인 윤호(尹虎)의 장녀와 경주인(慶州人) 문정공(文靖公) 이달충(李達衷)의 차녀이고, 딸은 숙녕택주(淑寧宅主)로 사위는 조선의 개국공신으로 영의정에 오른 의령인(宜寧人) 남재(南在)의 장남 남경문 이며, 외손자는 태종의 사위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이다.[37] 동방(同榜,1362년 문과 임인방)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이 문의공(文毅公)에게 보낸 시() ‘방동년 생녀 희정(方同年 生女 戲呈)’이도은집에수록되있다.


방여권(方與權) : 호조의랑(戶曹議郞)을 지냈다. 배우자는 안동(安東) 권씨(14273월 사망). 변계량(卞季良,1369년생) 시문집 춘정집에 '의랑 방여권에게 드림(呈方議郞 與權)'이라는 시가 있다. 1413(태종 13) 의관(衣冠,사대부) 출신으로 신흥세력들이 견제하여 허물을 만들어 처단하라고 간언하지만, 태종은 일언지하에 거절 했다.


방효유(方孝孺, 1357 ~ 1402) :()는 희직(希直) 희고(希古), 호는 정학(正學) 또는 손지(遜志). ()나라 때 대신이자 학자, 문학가, 사상가이다. 온양방씨 18(). 명조(明祖) 영락제(永樂帝)에게 불사이군(不事二君) 충절을 지키다, 10족의 멸족을 당함.


방유신(方有信) :서울출신이며, 1360년경 출생. 군기시(軍器寺) 소감(少監)을 지냈으며, 1443년 세종대왕이 마련한 원로중신들의 경로잔치에 참석하기도 했다.


방운실(方芸實) :초휘 태응(台應) 一云 춘응(春應), ()는 신어당(愼語堂). 문의공(文毅公) 방순(方恂)의 아들이며, 숙녕택주(淑寧宅主)의 오빠()이다. 고려조 진사시에 합격하고 별장(別將)을 했으며, 조선 개국원종공신이다.


방천(方天) : 소윤(少尹) 방희우(方希佑)의 장남이다. 중랑장(中郎將) 승훈랑(承訓郎)을 지냈으며, 조선 개국원종공신이다.


방용(方龍) :소윤(少尹) 방희우(方希佑)의 차남 회덕군(懷德君)이다. 기시감(軍器寺監)을 지냈으며, 조선 개국원종공신이다.


방언(方彦) :소윤(少尹) 방희우(方希佑)의 삼남이다. 검교내시부사(檢校內侍府事)를 지냈으며, 조선 개국원종공신이다.


방택(方澤) :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문인(門人)으로 상주목사(尙州牧使)를 지낸 방유량(方有良)의 아들로, 검교밀직사사를 역임했다. 조선 개국원종공신이다.


방지신(方之信) :중랑장(中郞將)으로 조선의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된다.


방장수(方長守) :산원(散員)으로 조선의 개국원종공신(開國原從功臣)이 된다.


방강(方綱, 1400 ~ ? ) : 방순의 손자. 자는 군필(君弼), 호는 경재(敬齎). 1447(세종 29)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헌납(獻納사성(司成정언(正言흡곡현령사간(司諫) 이천부사(伊川府使, 강원도 이천군)를 역임하고, 1454(단종 2) 승정원 좌승지(左承旨)에 올랐다. 계유정난 이후 부인 순천 김씨가 김종서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유배당하기도 했다. 성종 때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을 지냈다.


방계산(方桂山) :호군(護軍) 1455년 좌익원종3등공신(佐翼原從三等功臣)


방계충(方繼忠) : 주부(主簿) 1455년 좌익원종3등공신(佐翼原從三等功臣), 풍수학(1457).


방서동(方瑞同) :함경남도 출신 진무(鎭撫,軍官)로 이시애(李施愛)의 란을 평정한 공으로 세조조(世祖朝) 1467년 적개원종공신(敵愾原從功臣)이 됨.


방유령(方有寧, 1460 1529) : 자는 태화(太和), 호는 무기당(無期堂주탄(舟灘). 시호(諡號)는 문절(文節)이다. 중랑장(中郞將) 방을상(乙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 형조참의 방사우(方思友)이고, 아버지는 증 병조참판 방중지(方仲止)이다. 1486(성종 17) 사마시에 합격하고, 1489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청환(淸宦)에 있다가 1504(연산군 10) 갑자사화로 파직당했으나, 1505년 사헌부집의(司憲府執義)로 등용되었고, 1512(중종 7) 좌부승지(左副承旨)에 올랐다. 1515년 대사헌(大司諫), 1516년 대사간(大司諫), 1517년 공조참판, 대사헌(大司憲)을 거쳐, 1518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온 후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이 되었다. 이조참판과 병조참판을 역임하고, 1520(중종 15) 병조판서(兵曹判書)에 이르렀다.


방윤(方輪, 1464 1534) :조선 중종 때 계림군(雞林君)에 봉군되고, 2품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역임하였다. 두 차례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병조판서(兵曹判書)와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추증되었다.


방규(方規) : 경기도 강화(江華) 교동(喬桐) 출신이다. 아버지는 휘 치정(致正) 이다. 연산군(燕山君)의 폭정(暴政)을 끝낸 중동반정(中宗反正)에 내금위(內禁衛) 직으로 가담하여 1507년 정국원종2등공신(靖國原從二等功臣)에 녹훈(錄勳) 됐다.


방순달(方順達) : 1465년경 출생, ()는 백순(伯順). 종사랑(從仕郎). 개성(開城) 출신이다. 아버지는 휘 윤손(潤孫) 이다. 연산군(燕山君)의 폭정(暴政)을 끝낸 중종반정시

학생(學生)으로 가담하여 1507년 정국원종3등공신(靖國原從三等功臣)에 녹훈(錄勳) 됐다.


방응두(方應斗) :개성(開城) 출신이다. 아버지는 휘 순달(順達), 응규(應奎, 보명 繼昌)의 형. 개성 거주. 부사과(副司果). 조선의 왕실(王室) 전주이씨 종계(宗系)를 바로잡은 공으로 1591년 광국원종3등공신(光國原從三等功臣)에 녹훈(錄勳) 됐다.


방계창(方繼昌) : 1480년경 출생. 초휘(初諱) 응규(應圭). ()는 문백(文伯). 아버지는 휘 순달(順達) 이다. 아버지와 함께1507년 정국원종3등공신(靖國原從三等功臣)에 녹훈(錄勳) 되고, 뒤늦게 1549년 생원(生員) 식년시에 합격해[54] 개성에서 서울 경복궁 옆 

장의동(壯義洞): 현 종로구경복궁서쪽효자동사무소앞창성동)으로 이거(移居) 하였다. 인의(引儀)를 지냈으며 예빈시(禮賓寺) ()을 추증 받았다. - 창성(昌成) ()씨의 개조(開祖).


방호의(方好義) : 방윤(方輪)의 아들. 세종(世宗)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현손녀와 혼인하고, 1511(중종6) 경회루에서 활쏘기 장원을 하고, 1518년 부령부사가 되었다. 1525년 전라좌수군절도사 1540년 경상병마절도사를 거쳐 1542년 충주목사를 역임했다. 1544년 경상우수군절도사시 50년후 왜적의 침입을 예견하고 부산 가덕도(加德島)에 성을 축조하였다. 1545(명종 즉위년) 충청수군절도사, 1549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1550년 자헌대부(資憲大夫)로 평안도병마절도사를 지내고, 1554(명종 9) 2품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이르렀다.[56] 이어 동지중추부사를 지내고, 1556년 청홍도병마절도사(淸洪道兵馬節度使)로서 왜구의 방어에 힘썼다.


방인(方寅, 1511 ~ 1573) :경기도 강화 출신. () 원겸(元兼). 아버지는 영동(永同) 현감 휘 국형(國亨) 이고, 동생은 충무공 이순신 장인 보성군수(寶城郡守) 방진(方震) 이다. 둘째 사위가 사촌 아래 동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 휘하 장수로 1598년 예교(曳橋:順天倭城)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성주인 선무원종2등공신 충장공(忠壯公)

황세득(黃世得,1537년생) 이다. 명종조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했으나, 은일불사 했다.


방진(方震, 1514 ~ ? ) : 22세손. 할아버지는 평창군수를 지낸 방홍(方弘)이고, 아버지는 영동현감을 지낸 방중규(方中規)이다. 22세인 1535년 제주현감에 부임하였다가 이후 보성군수를 역임하였다. 사위는 이순신 장군이다. 사후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증직되었고, 부인 남양 홍씨는 숙인(淑人)으로 증직되었다.


방춘정(方春禎, 1523 ~ ? ) :경기도 여주 출신. 아버지는 통덕랑 휘 순효(舜孝). 1605년 임란시 공을 세우고 선무원종3등공신으로 녹훈(錄勳) 된다.


방우주(方佑周, 1543 ~ ? ) :()는 안분당(安分堂). 영동(永同) 현감(縣監) 휘 국형(國亨)의 손자이자 진사(進士)공 휘 인(,1511년생)의 아들이다. 선조(宣祖)조 서기 1576년 사마시(司馬試) 과장에서 장원(壯元) 다툼이 생겨 합격이 취소되고 충청도 아산으로 정배(定配)를 갔다. 1584년 방면되어 배천(白川)인 중봉(重峯) 조헌(趙憲)등과 교류 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나자 고향 강화 마니산에서 의병(義兵)을 이르켜 참전하여 어유간만호(魚遊澗萬戶)1596년 장예원판결사(掌隷院判決事)을 수임하며 왜적을 물리친 공으로 1605년 선무원종3등공신(宣武原從三等功臣)으로 책록되었다.


방덕공(方德恭) :평안남도 맹산(孟山) 출신. 아버지는 증 호조참판(戶曹參判) 휘 원길(元吉) 이다. 1605년 첨정(僉正)으로 임란시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호성원종2등공신으로 책록되었다. 사후 승정원좌승지와 경연참찬관(經延參贊官)을 추증(追贈 받는다.


방승경(方承慶, 1547 ~ ? ) : 경기도 평택 출신이다. 아버지는 개천군수 휘 윤지(允祉) 이다. 선조조 1572년 내금위(內禁衛)로 재직시 별시 무과에 급제했다. [58] 임진왜란 당시 옥포만호(玉浦萬戶)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도왔다. [59] 임란후 통훈대부 영흥판관(永興判官)을 지냈다.


방수경(方守慶, 1548 ~ ? ) : 경기도 평택(平澤) 출신이다. () 응길(應吉). 아버지는 충청도병마우후(忠淸道兵馬虞候) 어모장군 휘 윤행(允行) 이다. 1583년 알성시 무과에 등과하여, 목포만호(임란당시) 판관(判官) 도총도사(都摠都事)를 지냈으며, 1605년 임란시 선조를 호종한 공으로 호성원종1등공신(扈聖原從一等功臣) 훈호를 받음.

방준호(方俊豪) : 선조(宣祖) 광해군(光海君)조의 내관. 보국숭록대부 서하군(西河君). 광국원종2등공신(1591) 평난원종1등공신(1591) 호성원종2등공신(1605) 익사3등공신(1613, 후에 취소) 형난원종1등공신(1614, 후에 취소)

정운원종1등공신(1614, 후에 취소)


방응원(方應元, 1553 ~ ? ) : 충청남도 온양(溫陽) 출신. ()는 선중(善中). 아버지는 진위장군 휘 사열(思說). 1583년 정로위(定虜衛)로 별시 무과에 등과하고 임란시 충무공 이순신 휘하에 들어가 공을 세우고 1605년 부정(副正)으로 선무원종2등공신으로 녹훈(錄勳) 된다.


방희윤(方希尹, 1557 ~ ? ) : 경기도 양주(楊州) 출신. 아버지는 가선대부 훈련원주부 휘 훤() 이다. 1599년 훈련원 정() 당시 무과 정시(庭試)에 합격했다. 1605년 임란시 공을 세우고 선무원종3등공신으로 녹훈(錄勳) 된다.


방업(方業, 1558 ~ 1627) :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는 증 판결사(判決事) 행 절충장군(折衝將軍) 휘 수인(壽仁, 守仁) 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시 충무공 이순신을 도왔다. [61] 딸은 중종 초상화를 그렸던 어모장군 행 호군(護軍) 증 공조판서 광국원종공신(光國原從功臣) 중순군(仲順君) 이흥효(李興孝: 1537-1593)의 둘째 아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이장(李檣)에게 시집갔으나, 신병으로 남편이 세상을 뜨자. 따라죽어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내린다.


방응상(方應祥, 1559 ~ ? ) : 충청남도 온양(溫陽) 출신이다. 아버지는 무과 훈련주부 휘 규() 이다. 1605년 내금위로 임란시 선조를 호종했던 공으로 호성원종2등공신이 되고, 1614년 형난원종2등공신이 되었으나 인조반정후 취소 되었다. 1623년 전옥서주부를 했다.


방수(方水) : 1550년대 출생. 이명 영(). 보명 영(). 서울 장의동(壯義洞. 현 창성동) 출신. 아버지는 절충장군 행 판결사(判決事) 휘 수인(壽仁) 이다. 임란시 공을 세우고 1605년 선무원종3등공신으로 녹훈(錄勳) 되고, 인조반정시 부사과(副司果)로 공을 세우고 1625년 보사원종2등공신으로 녹훈 된다.


방덕룡(方德龍, 1561 1598) :()는 운보(雲甫), 호는 낙천(樂天)이다. 방호의의 손자이며 여절교위(勵節校尉) 방헌침(方獻忱)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경기도관찰사 정언각(鄭彦慤)의 셋째 딸이다. 1588(선조 21) 무과에 급제하여 낙안군수(樂安郡守)로 재직하던 중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부사(府使) 이영남(李英男), 만호(萬戶) 안여종(安汝棕)과 함께 절이도에서 복병을 하였다가 적을 협공하여 크게 이겼다. 이듬해 통제사 이순신의 선봉이 되어 노량해전에서 분전하다가 전사하였다. 형조참의에 추증되고,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방희민(方希閔, 1562 ~ 1609) : 경기도 양주(楊州) 출신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 호군 휘 웅() 이며 충무공 이순신이 사촌 자형이다. 1594년 무과 등과하고 1605년 훈련주부로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원종3등공신(淸難原從三等功臣) 되었다. 대포(大浦) 만호와 임유진(臨溜鎭) 첨절제사를 지냈다. 부인 전주 이씨(덕림군 후손)는 임진왜란시 왜적(倭賊)이 몸을 더럽히려하자, 꾸짖고 반항하다, 처참히 살해당하며 절개를 지킨 열녀(烈女) 이다.


방사호(方士豪) : 서하군(西河君) 방준호(方俊豪)의 동생. 주부(主簿). 수문장(1591) 첨절제사(僉節制使)를 했다. 임란시 선조를 호종했던 공으로 1605년 호성원종1등공신이 되고 1614년 익사원종3등공신에 책록 되었으나, 인조 반정후 후 취소되었다.


방효희(方孝禧) : 경기도 양주(楊州) 출신. 보명 효희(孝僖). 무과를 급제하고 이괄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1625년 진무원종3등공신에 책록 되었다. 아버지는 휘 예() 이며, 아들은 1627년 무과 장원 급제를 한 절충장군 두원(斗元) 이다. 손자 가선대부 순경(順慶, 보명 時爀)1681년 보사원종3등공신에 책록 되었다. 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방림(方琳, 1570 ~ ? ) :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結城) 출신. 아버지는 통훈대부 판관 휘 승경(承慶) 이다. 1615년 식년 무과에 급제하고, 1624년 이괄(李适) 난을 평정한 공으로 1625년 진무원종1등공신이 되었다. 사과(司果) 만포(滿浦) 첨절제사(僉節制使)를 했다.


방응상(方應祥, 1571 ~ 1645) : 아버지는 황해도 문화사람 지사(進仕) 휘 유범(有範)이고 어머니는 노()씨이다.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수제자로 법명은 송월당(松月堂) 이다.

일찍이 양친(兩親)을 여의고 14세에 이름난 산천을 두루 유람하다 구월산(九月山)에서 성행(性幸:性衍) 스님을 만나 머리를 자르고 계()를 받았다. 사명대사는 스님의 법기를

이내 알아보고서 적통 제자로 삼았다. 1624년 조정에서 사문(沙門)에게 명해 남한산성을 쌓게 하고 대사를 불러 공사를 감독케하고 팔도도총섭(八道都總攝)을 제수하였으나 사양하고 받지않았다. 조정에서 그 기상을 높이 평가하여 대사에게 묘담국일도대선사(妙湛國一都大禪師)라는 호칭을 내려주었다. 부도(浮屠)는 강산(金剛山) 유점사(楡岾寺)에 있다.


방의남(方義男) : 서울 출신이다. 자헌대부(資憲大夫) 지충추부사(知中樞府事) 휘 희()의 아들이다. 상통사(上通事) 가의대부(嘉義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광해군(光海君)조에 중국에 몰래 들어가 황기와(黃瓦) 제작기법을 배워왔다.


방식(方軾, ? ~ 1645) : 경기도 강화 출신. 아버지는 무과 증 참판(參判) 휘 승익(承翼) 이다. () 평숙(平淑). 1605년 무과에 합격하여,[65] 1618년 강화부 우사파총(右司把摠), 1625년 남해현령(南海縣令), 1629년 가산군수(嘉山郡守), 1636년 함종현령(咸從縣令), 1639년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 삼수군수(三水郡守)를 역임했다.[66] 1645년 삼수군수(三水郡守)로 있을 때 유탁(柳濯)의 반란을 진압하다가 전사했다. 가선대부(嘉善大夫)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추증되었고, 강화군 길상면 길직리에 충신문이 세워졌다.


방대충(方大忠) : 1580년경 출생.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심천면(深川面) 출신. 아버지는 휘 희윤(熙倫) 이다. 무과에 급제하고 1624년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1625년 진무원종(振武原從)1등공신으로 책록 되었다. 훈련주부를 했다.


방승남(方承男) : 1580년경 출생. 서울 장의동(壯義洞. 현 창성동) 출신. 아버지는 증 판결사 휘 현() 이다. 임란시 공을 세우고 1605년 선무원종3등공신으로 녹훈(錄勳) 된다. 1614년 형난원종3등공신에도 책록 되지만 인조반정후 취소된다. 의과(醫科) 직장(直長), 판사(判事)를 했다. 방의남(方義男)의 사촌 동생이다.


방기천(方起天, 1581 ~ ? ) :경기도 강화 출신이다. 아버지는 휘 헌() 형은 익사원종3등공신 황주병마절도사(黃州兵馬節度使)를 했던 방천수(方天壽) 이다. 1646년 수문장으로 심기원(沈器遠)의 모반을 평정하는데 가담한 공으로 영국원종3등공신을 녹훈 받는다.


방승남(方承南, 1588 ~ ? ) : 함경북도 경원군(慶源郡) 출신이다. 아버지는 여절교위(勵節校尉) 훈련원판관 휘 중량(仲良) 이다. 무과를 합격하고,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1625년 진무원종(振武原從)1등공신으로 책록 되었다.


방애남(方愛男, 1594 ~ 1667) :평안남도 정주(定州) 출신이다. 아버지는 통정대부 휘 희상(希祥) 이다. 무과에 급제하고,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1625년 진무원종3등공신으로 녹훈(錄勳) 되었다.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방두원(方斗元) :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낸 휘 효희(孝僖)의 아들. 1627(인조(仁祖) 7) 상호군(上護軍)으로 식년시 무과 갑과(甲科) 장원(壯元)하고,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가자(加資) 되었다.


방지남(方指男, 1597 ~ 1668) : 서울 출신. 보명 지남(智男). 아버지는 자헌대부 지중추부사 휘 희() 이다. 전 어의(御醫)로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1625년 보사원종3등공신이 되었으며, 1646년에는 영국원종1등공신이 되었다. 가선대부(가선대부)를 지냈다.


방식(方湜, 1598 ~ ? ) : 경기도 양주 출신이다. 아버지는 청난원종3등공신 휘 희민(希閔) 이다. 무과 급제후 강동현령(江東縣令)을 했다. 1646년 심기원(沈器遠)의 모반을 평정한 공으로 영국원종(寧國原從)2등공신으로 녹훈 되었다.


방사기(方士奇, 1598 ~ ? )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는 부호군 선무원종3등공신 휘 수(, 이명 , ) 이다. 1637년 소비포만호(所非浦萬戶)를 하고, 1644년 별시 무과에 급제하고

1646년 심기원(沈器遠)의 모반을 평정한 공으로 영국원종3등공신 녹훈. 부호군을 지냈다.


방사룡(方士龍) : 1600년경 출생. 무과에 급제하고 한량(閑良)으로 이괄(李适)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1625년 진무원종3등공신에 책록 되었다. 아들 두완(斗浣, 1633년생)1672년 무과 별시에 급제하였다.


방귀생(方貴生, 1603 ~ 1643) :온양(溫陽) 출신. 아버지는 휘 세영(世英) 이다. 1681년 허견(許堅)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고 보사원종3등공신으로 책록 되었다. 아들 방이길(方履吉)은 보사원종2등공신이 되어 부자가 함께 원종공신이 되었다.


방지원(方智遠, 1604 ~ 1684) : 보명 지원(智圓). 충청남도 청양(靑陽) 출신. 1644년 포도군관(捕盜軍官), 1646년 심기원(沈器遠)의 모반을 평정한 공으로 영국원종(寧國原從) 1등공신이 되었고, 1647년 창주첨절제사(昌洲僉節制使) 1648년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사후 자헌대부(資憲大夫)와 지중추부사를 추증 받는다.


방준(方峻, 1604 ~ ? ) :서울 출신. 아버지는 휘 전() 이다. 1637년 별시 무과에 합격하고, 1646년 수문장일 당시 시기원(沈器遠)의 모반을 평정하는데 가담하여 영국원종3등공신의 훈호를 받았다.


방경창(方景昌, 1615 ~ ? ) : 부평(富平) 거주. 아버지는 휘 득천(得天) 이다. 1637년 별시 무과에 급제하고, 품계가 절충장군(折衝將軍) 이었다. 1646년 심기원(沈器遠)의 모반을 평정한 공으로 영국원종1등공신을 녹훈 받고, 1649년 위장(衛將) 1658년 부사맹(副司猛)을 지냈다.


방시헌(方時憲, 1619 ~ 1694) :양주출신 서울 거주. 아버지는 1624년 이괄(李适)의 난시 의병으로 참전하여 황해도 금천(金川) 청룡포(靑龍浦)에서 순절(殉節)한 휘 흡() 이다.

1646년 심기원(沈器遠)의 모반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영국원종3등공신에 녹훈되고, 1651년 별시 무과에 급제, 1674년 초관(哨官) 1676년 주부를 거쳐 1677년 군기시판관을 역임했다.


방이원(方以遠, 1625 ~ 1702) : () 만리(萬里).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는 호군(護軍) 증 참판(參判) 휘 승검(承檢) 이다. 1646년 심기원(沈器遠)의 모반을 평정한 공으로 영국원종(寧國原從) 1등공신이 되었고, 1656년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 1667년 찬의(贊儀) 1668년 사근찰방(沙斤察訪) 1673년 부호군(副護軍) 1674년 예빈시주부 1691년 송라찰방(松羅察訪) 등을 역임한다.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를 추증 받는다.


방이길(方履吉, 1628 ~ ? ) : 온양(溫陽) 출신. 아버지는 보사원종3등공신 증 군자감정 휘 귀생(貴生). 권관(權管)으로 1681년 허견(許堅)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고 보사원종 2등공신으로 책록되고, 1682년 사량만호(蛇梁萬戶) 1686년 평안북도 벽동군의 아이(阿耳) 첨절제사(僉節制使) 부호군(副護軍)의 직을 수행했다.

송암당(松巖堂, 1628 ~ 1699) : 조선의 승려. 속성은 방()씨로 평안남도 성도(成都) 사람이다. 13세에 출가하여 낙송(洛松) 모하(暮霞)의 제자가 되어 참선수행에에 전념하였으나 당오(堂奧)에 이르지 못하다가, 만년에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의심(義諶) 풍담(楓潭 1592-1665)대사 문하로 들어가 깨달음을 얻고 풍담의 선종 법맥을 이었고, 1699923일 소양(昭陽)의 송곡사(松谷社)에서 입적하였다. 대사는 생전에 자신의 의지를 돈독히하고, 도의 경지가 깊었다 한다. 유언대로 묘향산 백운동(白雲洞) 에서 다비식(茶毘式)을 거행후, 사리(舍利) 2과를 수습하여 1과는 고향(故鄕)인 순천군과 맹산군 근처인 능성(綾城) 구룡산(九龍山:평남 성천군)에 부도를 세워 봉안하였고, 1과는 수도하던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동쪽에 부도를 세워 봉안하였다. 추붕(秋鵬) 설암(雪巖) 대사가 비명(碑銘)을 지었다.


방필태(方必泰, 1629 ~ ? ) :서울 출신이다. () 여종(汝宗). 보명 필대(必大). 아버지는 통훈대부 관상감직장 휘 이정(以正) 이다. 사과(司果) 당시인 1651년 별시 무과에 급제하고, 1681년 습독(習讀)으로 허견(許堅)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보사원종2등공신으로 책록되고, 그해 아오지만호(吾乙足萬戶)가 되었다.

방이관(方以寬, 1630 ~ 1706) :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는 판관(判官) 증 군자감정 정운원종3등공신(후에 취소) 휘 승철(承哲) 이다. 무과에 등과하고, 1675년 송라만호(助羅萬戶)를 하고, 1681년 절충장군으로 허견(許堅)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보사원종3등공신이 되고, 1686년 어유간(魚游澗) 첨절제사(僉節制使) 1697년 백치(白峙) 첨절제사를 했다. 사후 참의(參議)로 추증 되었다.

방이준(方以準. 1632 ~ ? ) : 충청남도 청양(靑陽) 출신이다. 아버지는 증 자헌대부 부호군 휘 지원(智圓, 智遠) 이다. 무과에 등과하고 1681년 만호로 재직시 허견(許堅)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고, 용양위 부호군과 절충장군이 된다.

방운(方雲, 1638 ~ ? ) :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는 진위장군(振威將軍) 수문장 휘 응원(應元) 이다. 1681년 부사맹(副司猛)으로 허견(許堅)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보사원종3등공신에 책록되고 아오지(阿吾地) 만호가 된다. 1686년 첨절제사, 1687년 감포(甘浦) 만호, 1690년 부사과(副司果)를 지낸다.

 

방준창(方俊昌, 1649 ~ 1721) : 강원도 춘천 출신. () 성보(聖甫). 아버지는 휘 유후(有後) 이다. 숙종조에 무과에 급제하고, 1681년 초관(哨官)으로 허견(許堅)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보사원종2등공신으로 책록되고, 1697년 고군산(古群山) 첨절제사(僉節制使)를 지냈다.


방진기(方震夔, 1655 ~ 1729) :서울 출신이다. () 일경(一卿). 아버지는 영국원종1등공신이며 부호군을 지낸 증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휘 이원(以遠) 이다. 어의(御醫)를 했으며, 1706년 경안찰방(慶安察訪)을 거쳐 1710년 부호군이 되었다. 1725년 연천현감 재직시 백골징포(白骨徵布)와 둔아병(屯牙兵) 폐단 등을 보고하여 시정케 하였으며, 1726년 과천현감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현민(縣民)들의 어려움을 살펴 선정을 함으로 임기후 현민들이 공덕비를 세워주었다.(현재 금천구 과천에 있음) 1728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로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아들 세겸(世謙) 손자 태여(泰與) 3대가 함께 양무원종1등공신(揚武原從一等功臣, 奮武原從一等功臣)이 된다. 승록대부를 했다.


방득신(方得信. 1661 ~ ? ) : 서울 출신이다. () 인보(仁輔). 아버지는 휘 운일(雲一) 이다. 1681년 무예별감(武藝別監)으로 재직시 허견(許堅)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고 보사원종3등공신(保社原從三等功臣)이 되고, 1686년 전력부위 당시 별시 무과에 급제한다.


방즙(方濈, 1661 ~ 1725)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출신. 아버지는 통정대부 부호군 휘 수선(受善, 보명 愛善)이다, () 문화(文華). 숙종조 1699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교서관(校書館) 부정(副正) 은계찰방(銀溪察訪) 조산대부(朝散大夫)를 지냈다.


방필량(方必亮) : 1670년경 출생. 보명 필량(必良).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 통훈대부 관상감직장(觀象監直長) 휘 이정(以正)의 막내 아들이다. 1681년 어모장군(禦侮將軍)시 허견(許堅)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보사원종3등공신이 되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방일상(方日尙, 1676 ~ ? ) : 보명 진웅(震雄). 충청남도 청양(靑陽) 출신이다. () 대이(大而). 아버지는 보사원종3등공신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 휘 이준(以準) 이다. 1714년 무과 증광시에 급제하고, 1720년 경복궁가위장, 1721년 차령(車嶺) 첨절제사를 하고, 1728년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2등공신(揚武原從二等功臣, 奮武原從一等功臣)이 된다. 1734년 부호군(副護軍)을 지냈다.


방진성(方震晟, 1677 ~ 1735) : 서울 출신이다. () 공보(公保). 아버지는 무과 절충장군 증 참의(參議) 휘 이관(以寬) 이다. 무과를 급제하고 사정(司正)과 사과(司果)를 지내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고, 1733년 발포만호(鉢浦萬戶)가 되었다.


방세겸(方世謙, 1680 ~ 1752)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는 어의(御醫)를 지낸 숭록대부 부호군 휘 진기(震夔)이다. 전옥주부(典獄主簿) 찰방(察訪)을 지냈다. 1728년 인의(引儀) 당시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아버지와 아들 태여(泰與) 3대가 함께 양무원종1등공신(揚武原從一等功臣)이 된다.


방만규(方萬規, 1680 ~ 1725) :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출신. 아버지는 가선대부 휘 내길(乃吉)이다, () 여해(汝楷). 숙종조 1715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수찬(修撰)조지서별제(朝紙暑別提) 등을 역임. 신축임인사화(辛丑壬寅士禍) 이후 영조가 등극하자 노론편에 들어 소론을 비판하자, 탕평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참형당해 순절 하였다. 증손 능원(能圓)이 상소하여 신원(伸冤) 되었다.


방대녕(方大寧, 1683 ~ ? ) : 서울 출신이다. () 이안(爾安). 아버지는 절충장군 휘 시석(時碩)이다. 부사맹(副司猛)을 지내고 1705년 무과 증광시에 급제하고, 1714년 목포만호(木浦萬戶), 1724년 부사과(副司果), 1724년 어유간첨절제사(魚游澗僉節制使)를 하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2등공신에 녹훈 되었다. 1733년 허사첨절제사(許沙僉節制使)를 했다. 목포만호 시절인 1715년 굶주린 백성들을 진휼(賑恤)하여, 그 은덕을 기리기위해 백성들이 건립한 비석을 일제강점기 청사 뒤뜰에 묻어버린 것을, 후에 시민들이 발견해 목포진 청사 복원후 다시 세웠다.


방세중(方世重, 1686 ~ 1740) : 서울 출신이다. () 대이(大而). 생부는 휘 진기(震紀) 양부는 연일(延日) 현감과 토산(兔山) 현감을 지낸 휘 진설(震說,진열) 이다. 1712년 무과에 급제하고, 1728년 금위군(禁衛軍)으로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1738년 지도만호(智島萬戶)가 되었다.


방처유(方處裕, 1686 ~ 1740) : 서울 출신이다. () 성화(聖化). 아버지는 통정대부 휘 진익(震翊)이다. 무과에 급제하고, 판관(判官)과 사과(司果)를 지냈고, 1728년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같은해 위라만호(位羅萬戶) 1738년 선적첨절제사(善積僉節制使)가 되었다.


방성규(方聖規, 1687 ~ ? ) :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출신. 아버지는 가선대부 휘 내길(乃吉)이다, 방만규(方萬規, 1690년생)의 동생이다. () 여상(汝常). 경종조 1721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교서관(校書館) () 교서관(校書館) 박사(博士)를 지냈다.


방최일(方最一, 1691 ~ ? ) : 충청남도 온양 출신이다. 아버지는 증 군자감정(軍資監正) 휘 인길(仁吉) 이다. 17163월 숙종(肅宗)이 온양 온천 체류시 온양 배방산(排方山)의 명칭을 현재 배방산(拜芳山)으로 고쳤다 함. 1728년 사과(司果)로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3등공신에 녹훈되었다.


방유곤(方有坤, 1693 ~ ? ) :서울 출신이다. () 유경(維卿). 아버지는 어모장군 휘 우구(禹矩) 이다. 1725년 직부로 무과 증광시에 급제하고, 1728년 동생 방수곤(方守坤)과 함께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방수곤(方守坤) :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는 어모장군 휘 우구(禹矩) 이다. 방유곤(方有坤)의 막내 동생이다. 1728년 큰형 방유곤(方有坤)과 함께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1768년 절충장군으로 늦은 나이에 무과에 등과함으로 먼저 무과에 등과했던 형 유곤(有坤) 재곤(載坤)과 함께 3형제 모두가 무과에 등과 했다.


방태여(方泰與, 1705 ~ 1778) : 서울 출신이다. () 성득(聖得). 아버지는 증 판중추부사 휘 세겸(世謙) 이다. 1728년 부봉사(副奉事)로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조부 휘 진기(震夔)와 아버지 휘 세겸(世謙) 3대가 함께 양무원종1등공신(揚武原從一等功臣, 奮武原從一等功臣)이 된다. 1743년 첨지중추부사, 1757년 부평도호부사(富平都護府使), 1768년 통진부사(通津府使)를 했으며, 수의(首醫)와 숭록대부를 지냈다.


방홍적(方弘迪, 1708 ~ ? ) : 서울 출신이다. () 도경(道卿). 아버지는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휘 필규(必規) 이다. 1728년 무예별감(武藝別監)으로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하는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방두방(方斗芳, 1709 ~ ? ) :() 춘우(春遇), 업무(業武) 흥적(興積)의 아들이다. 영조(英祖) 4년 서기1728년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亮)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양무원종3등공신(揚武原從三等功臣)이 되었으며,[69] 영조 16년 서기 1740년 증광시 무과 갑과 장원(壯元)을 하였다. 그해 장원급제후인 11월 호위군관(扈衛軍官)을 거쳐 예빈시 별제(別提)가 되었으며, 영조 27년 서기 175199일 광양(廣梁) 첨절제사를 지냈다.


방우곤(方禹坤, 1724 ~ ? )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 아버지는 휘 진섭(震燮). ()는 성천(聖天). 영조조 1756년 식년 문과 급제. 양현고주부(養賢庫主簿)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등을 역임했다.


방태곤(方泰坤, 1726 ~ ? )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 아버지는 장사랑 휘 채(). 자는 계천(繼天, 啓天). 영조조 1768년 식년 문과 급제. 가주서(假注書)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등을 역임했다.


방역(方易, 1729 ~ ? ) :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 아버지는 휘 진석(震碩). ()는 성직(聖直). 1792(정조 16)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겸춘추(兼春秋), 예조좌랑을 역임하고, 사성(司成)에 이르렀다.


방재악(方在岳, 1739 ~ ? ) : 평안남도 맹산(孟山) 출신. 아버지는 휘 세권(世權) 이다. ()는 자천(子川). 정조조 1785년 정시(庭試) 문과에 급제. 성균관학전(成均館學正)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등을 지냈다.


방종거(方宗擧, 1743 ~ ? ) : 평안남도 순천(順川) 출신. 아버지는 휘 만징(萬澄) 이다. ()는 수백(售伯). 영조조 1768년 식년 문과에 급제.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 춘추관편수관(春秋館編修官) 어천찰방(魚川察訪) 등을 지냈다.


방효언(方孝彦, 1749 ~ ) : 서울 출신이다. 아버지는 사과(司果) 휘 태원(泰元) 이다. ()는 미백(美伯). 몽학(蒙學)을 전공하고 훈도(訓導)로 재임시, 1771년 역과(譯科)에 등과한다. 1790(정조 14)에 몽어유해를 다시 개정 간행한 것이 바로 현존하는 몽어유해(蒙語類解) 이다. 이때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 첩해몽어(捷解蒙語)도 함께 개간 편찬했다. 이 세가지 책에 대한 서문이 첩해몽어의 몽학삼서중간서(蒙學三書重刊序)이다. 이 책들은 조선 시대 몽고어 학습서인 동시에 과거시험용 도서로 유명하다. 지금으로 치면 외무고시를 볼 때 외국어 수험도서인 셈이다. 묘지가 2000년대 초, 140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내려왔던 온양방씨 교수공파 선영들이 토개공의 경기도 남양주 별내면 주택단지 조성시 파묘될 시 멸실되었다


방우정(方禹鼎, 1772 ~ 1820) :조선 정조 때 무과 급제하고 서정군(西征軍) 좌초관(左哨官)으로서 홍경래의 난 진압 공을 세웠다. 저서로 서정일기(西征日記)가 있다. 1816년 구례현감을 지냈으며, 철종 때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방유혁(方有赫, 1778 ~ 1843) : 충남 논산출신. 효행이 뛰어났고, 태종조 개국원종공신 영화군(永華君)을 봉작받은 16운실(芸實, 초휘 台應, 이명 )공의 15대손으로 순조 도광 33(서기 1833) 태종교서 계하사목(啟下事目)을 충훈부(忠勳府)에서 급사(給寫) 받아 공신(功臣)후손임을 입증 받음.


방계영(方啓霙, 1789 ~ 1838) :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 조부는 예조좌랑 휘 역(), 아버지는 휘 치원(致元) 이다. ()는 계령(啓靈, 보명). 순조조 1831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형조좌랑(刑曹佐郎)을 지냈다.


방우서(方禹敘, 1789 ~ ? ) : 서울출신이다. 초명 우구(禹龜). 생부는 증 참의(參議) 휘 효직(孝直), 양부는 증 판서(判書) 휘 효의(孝懿) 이다. () 낙서(洛瑞). 숭록대부 통진부사(通津府使)를 지냈다. 1851년 사역원에서 동문고략(同文考略)을 대제학 조두순(趙斗淳)을 도와 간행시 당상(堂上) 교정역관(校正譯官)으로 참여 했다. 1866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E. J. Oppert)가 강화 앞바다 침입시, 문정관(問情官)으로 파견되 엠퍼러(the Emperor)호에 승선 오페르트와 담판후 물러나게 함.


방우도(方禹度, 1790 ~ 1858) : ()는 신백(身伯). 호는 우산(友山) 이다. 건장한 체구였지만, 섬세한 예능적 기질이 있어 당대 산수화(山水畵)의 대가(大家)였다.


방희용(方羲鏞, 1805~ ? ) : () 성중(聖仲).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제자였다. 글씨와 그림에 능하여 이상적(李尙迪)은 그의 임수독서도(臨水讀書圖)를보고예찬(倪瓚)과 심주(沈周)의 옛 법이 배어 있다고 하였으며, 김석준(金奭準)은 그의 묘법(妙法)이 동원(蕫源)과 거연(巨然)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유작으로 묵매도(墨梅圖)등이 전한다.


방기원(方夔源, ? ~ ? ) : 1867년 오위장(五衛將)을 했으며, 훈련원(訓鍊院)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했으며, 1880년 초명 방기원(方起圓)에서 개명하고 경상중군(慶尙中軍) 부호군(副護軍), 1881년 함경남도병마우후(咸鏡南道兵馬虞侯)를 했다.


방득원(方得圓, ? ~ ? ) : 1855년 만경현령(萬頃縣令) 1857년 양덕현감(陽德縣監)을 했다.


방종한(方宗翰, 1817 ~ 1867) :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 아버지는 휘 계황(啓璜) 이다. ()는 국균(國均). 철종조 1858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경양찰방(景陽察訪) 예조좌랑( 禮曹佐郎)을 지냈다.


방익용(方益鏞, 1818 ~ 1866) :() 경초(景韶). 자헌대부(資憲大夫)[75]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를 지냈다. 1866년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가무단(無斷)으로 대동강 상류로 침투하여 전투발발시 평양군영 소속으로 중군(中軍) 이현익(李玄益)과 함께 선상에 올라 문정중(問情中) 상선 소유주 프레스턴과 선장 페이지 선교사 토마스등이 감금하려하자, 물에 뛰어들어 전몰(戰歿)했다.


방효임(方孝任, ? ~ ? ) : 1867년 운봉현감(雲峰縣監)을 했다.


방효함(方孝涵, 1822 ~ 1885) :경기도 양주(楊州) 출신이다. 아버지 증 가선대부 휘 진국(鎭國)의 삼남(三男) 이다. 1884년 방두형(方斗衡)으로 개명. 1858년 훈련주부 훈련판관 어영청초관 남양감목관을 거쳐 1864년 오위장 및 첨지중추부사가 됨. 1867년에 운봉현감(雲峰縣監) 보령현감(保寧縣監)을 거쳐 1869년에 구례현감(求禮縣監) 1873년에

경상중군 1874년 오위장(五衛將)이 되었으며, 1875년 가선대부(嘉善大夫) 동지중추부사, 1884년에 호군(護軍)이 되었다.


방만춘(方萬春, 1825 ~ ? ) :충남 서산(瑞山) 해미(海美) 출신. 조선 철종(哲宗)조 판소리 명창.


방달주(方達周, 1826 ~ 1890) : 충남 논산출신. 선략장군(宣略將軍) 용양위부사과(龍驤衛副司果). 논산의 향토유적 제1호인 국궁 수련장 덕유정(德遊亭)의 제9대 사백(師伯)으로 1926년 덕유정 편액과 사계좌목(射契座目)을 썼다.


방건용(方建鏞, 1826 ~ ? ) :() 순오(順五). 호는 초동(初銅). 아버지는 사과(司果) 휘 우구(禹九)이다. 서예가(書藝家) 추사 김정희의 제자이다. 1848년 역과에 장원을 하고, 사역원 첨정(僉正)을 지냈으며, 봉래공 한익(漢翼)과 같이 아회도(雅會圖)에도 참석 하기도 했다.


방윤명(方允明, 1827 ~ 1880) :()는 노천(老泉), 호는 운남(芸南) 혹은 노천(老泉)이다. 생부는 무과 맹산현감(孟山縣監)을 지냈던 휘 우성(禹聲)이며 양부는 산수화의 대가 휘 우도(禹度)이다. 무과에 등과하고, 1867년 수문장(守門將)을 거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충장위장(忠壯衛將)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이 되고 품계는 당상관(堂上官)인 절충장군(折衝將軍)이 되었다. 1872년에는 오위장(五衛將)을 하고, 1873년 가리포첨절제사(加里浦僉節制使), 1875년 기사장(騎士將)을 했다.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제자로 당대의 뛰어난 서예가(書藝家)로 글씨는 완당 김정희의 예서체를 따랐고 그림은 특히 매화와 난초를 즐겨 그렸다. 7살 위인 석파(石破)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후에 난초를 그려달라는 사람이 있으면 노천(老泉)이 대신 그려주었다고 한다. 노천공과 석파 이하응(李昰應)과는 그 필체와 화법이 서로 닮아서 세상사람들이 능히 구별하지 못했다고 한다. 대원군이 집권을 하기 전 1851년 대원군이 직접 작성한 묵란첩(墨蘭帖)을 제작해 추사 문하(門下) 후배 노천에게 주며 첩의 마지막장에 노천에게 소장하라고 준다라는 뜻의 지증노천장(指贈老泉藏)이라고 기록 하였다.


방한익(方漢翼, 1833 ~ ? ) : 양주(楊州) 출신이다. () 봉래(鳳來) 혹은 지수(芝叟), 호는 지산(芝山)이다. 아버지는 가선대부 동추(同樞)공 휘 희용(羲鏞)이다. 추사의 제자로 서예가이다. 사역원 첨정(僉正)을 지냈다. 1856년 김흥근(金興根)과 조두순(趙斗淳)등이 결성한 우계(友契) “二十一客之契글씨를 예서체(隸書體)로 쓰기도 했다.


방한철(方漢喆, 1834 ~ 1887) :양주(楊州) 출신이다. ()는 중길(重吉), 아버지는 휘 윤중(允中) 조부는 무과출신 우교(禹敎)이다. 1860년 가인의(假引儀)를 거쳐, 1865년 부사과(副司果) 1871년 인의(引儀) 및 동부령(東部令) 1873년 부여현감(夫餘縣監)을 했다.


방천용(方天鏞, 1835 ~ 1893) :()는 인여(仁汝) 또는 인여(因汝) 호는 하상당(霞裳堂). 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우부(禹敷)이며 어머니는 신평(新坪) 한씨이다. 1880년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1882년 통진부사(通津府使) 및 대호군(大護軍)으로 품계가 종1품 숭정대부(崇政大夫)가 되었다. 1884년 안산군수, 1888년 진위현령, 1890년 시흥현령, 1892년 영평군수, 1896년 과천현감을 했다. 산수화(山水畵)와 절지화(折枝畫)를 잘 그렸다.


방효린(方孝隣, 1843 ~ ? ) :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 아버지는 휘 찬주(贊周) 이다. 자는 사흠(四欽). 고종조 1865년 식년 문과에 급제. 예조좌랑(禮曹佐郎) 병조좌랑 지평(持平) 부호군(副護軍)등을 지냈다. 증 참의(參議).


방하진(方夏鎭, 1845 ~ 1918) : 평안북도 정주군 출신. . 아버지는 예조좌랑 휘 종한(宗翰) 이다. ()는 내화(乃華), ()는 하정(荷亭)이다. 고종조 1879년 식년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저작(承文院著作,1884) 봉상시직장(奉常寺直長,1884) 경양찰방(景陽察訪) 전적(典籍,1888) 지평(持平,1889) 동지중추부사(1889)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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